나 자신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면
되고 싶은 건 없지만 하고 싶은 건 많은 열정 만수르/갓생러?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와! 너 엄청 열심히 산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들어왔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데..
나는 한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경쟁이 치열해서 지치는 곳, 열심히 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모두가 지나치게 열심히 살아 모두가 힘든 곳이라는 말에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n살에 XX를 하면 너무 늦겠지?와 같이 나이에 대한 강박관념처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좋은 직장, 좋은 집 등에 대한 강박도 스스로가 집어던진다면 누구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남들이 볼 때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였던 걸까?
나는 천성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매우 충동적인 사람이고,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은 최대한 미루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지 실천한다.
겁은 많지만 어떤 일을 실천하는 것이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그러니까 밑져야 본전이면 일단 부딪히고 포기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이것저것 해보게 되었고, 남들이 볼 때는 갓생러가 되어있었다.
대학에서 대학에서 어문/상경 계열을 복수 전공하였고, 졸업 후엔 무역회사에 취업했다.
그리고는 외국에 있는 한국계 은행원으로 이직을 했고, 서른 살에 뜬금없이 개발자가 되었다.
어렸을 때는 영어를 좋아해서 막연히 영어영문학과에 가고 싶었다.
나는 지방 출신이고,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첫째가 대학을 위해 상경하자 집에선 둘이나 서울로 보내기엔 부담이 된다며 둘째였던 내가 지거국에 가서 고향에 남길 바랬다.
하지만 내가 공부를 훨씬 더 잘했고 수능도 괜찮게 봤는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울에 있는 대학 중 내 성적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는 학교의 스페인어과를 택하고 도망쳐왔다.
스페인어는 영어와 비슷해 배우기 쉽고 사용하는 곳도 많아 전망이 좋다는 이야기가 10년 넘게 들려왔지만 실제로 전망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취업을 위해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지만 수포자였던 내게 경제는 너무 어려웠고 힘겹게 졸업을 했다.
졸업 후에 같은 과 대선배가 멕시코에 만든 원단무역회사에 취업했다.
멕시코로 떠날 때에는 일단 다녀보고 안 맞으면 워홀 다녀왔다 생각하고 1년만 다녀오자!라는 생각으로 갔다.
현지에서 악덕기업으로 유명한 곳이었으나 세상 물정 모르는 사회 초년생을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한 덕인지 3년이나 버틸 수 있었다. (당시 같이 다녔던 친구들을 지금도 주기적으로 만나는데, 거기서 온갖 악덕 기업의 면모를 겪은 덕분에 지금은 어딜 가든 견딜 수 있다며 농담하며 웃기도 한다.)
퇴사 후 귀국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멕시코에 법인 설립을 준비 중인 한국계 은행 직원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이력서를 내고 행원으로 이직까지 하게 되었다. 은행 경력이 없었으니 인사총무팀으로 입사했다가 수신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해외 법인이기 때문에 업무 분업이 한국처럼 완벽하게 되어있진 않아서 수신이지만 자금부 Back Office를 겸업하고, 여신 규제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SWIFT 메시지 관련 업무를 했다. 그리고 한국인인 죄로 여러 회의에 끌려다니며 IT, 내부통제, AML/Compliance 부서의 통역을 돕기도 했다. 이렇게 글로 나열해 놓으면 엄청난 업무를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어느 것도 깊이 있게 알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들어만 본 수준이다.
나는 평생 멕시코에 살고 싶지는 않은데.. 그 전의 업무와 연결성도 없고 은행 업무도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인데 이대로 한국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한국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서 또 퇴사와 귀국을 결심했다.
지금 회사에서는 당시에 사용하는 전산 시스템을 차세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고 은행 경력을 인정해 줘서 이직을 할 수 있었다.
개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내가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이력서를 쓰며 대과거를 생각해 봤다.
1990년대 중반 우리 아빠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당시에 초고가였던 윈도우 95 PC를 한 대 사 왔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나는 그렇게 컴퓨터를 처음 접했고, 10살 때 워드프로세서 자격증도 취득했다.
12살 때쯤 장미가족 카페에 가입해 포토샵을 독학해 나모 웹 에디터를 사용해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호스팅 할 공간이 필요해 알아보다가 웹호스팅 업체의 부운영자로 뽑혀서 홈페이지 운영을 지원하며 웹 공간을 무료로 제공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13살을 뭘 믿고 부운영자로 뽑은 건지 정말 신기하지만 특별히 어려운 활동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HTML TAG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따라 하고 공부했었다.
대학교 때는 어렸을 때 포토샵을 공부했으니 학점을 쉽게 딸 생각으로 웹디자인과 정보사회의 프로그래밍 기초라는 교양 과목을 수강하며 JAVA를 조금 배웠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조금씩 공부해 온 것이 당시 나에겐 너무나 막연하고 생소했던 개념인 '코딩'의 일부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그렇다면 개발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이 서른에 나는 개발자 타이틀을 달며 회사에 입사했다.
처음 사용한 프레임워크는 내가 미디어에서만 접해온 까만 배경 하얀 글씨에 날코딩 하는게 아니라,
전문적인 개발 지식보다는 업무 지식과 로직에 집중해서 남이 짜놓은 프로그램을 적절하게 복붙 하면 얼레벌레 일은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초부터 탄탄히 공부하고 올라온 전공자와 나에게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개발자 커뮤니티를 위한 면접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같이 면접을 본 개발자들이 업무도 아니고 취미로 개발하는 것에도 꽂히면 밤까지 새우면서 끝까지 파고드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저 정도로 개발하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는데.. 개발자로서의 내 미래가 이대로 괜찮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걸어온 모든 길들을 하나의 개별적인 요소로 바라보았고, 연결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취미로 하던 포토샵과 홈페이지 만들기
무역 회사에서의 경험
반쪽짜리 은행원으로서의 경험
(내 기준) 특이하게 생긴 프레임워크로 하던 코딩 경험
내 짧은 글 실력으로 내가 느꼈던 감정을 완벽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외국환 업무를 담당하며 약간의 충격(?)을 받게 되었다.
정말 필요 없을 것만 같았던 무역회사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고 (수출입, 통관 관련한 L/C, T/T 등), 은행에서 엑셀에 수기로 작성하며 현타를 느꼈던 여신 보고서도, SWIFT 메시지도, 그리고 전 프로젝트에서 사용했던 프레임워크, 취미로 홈페이지 만들 때 속성으로 배운 HTML이 모두 다 조금씩 모여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독립적인 개념으로 보고 이런 거 해서 나중에 어떻게 이직하지? 뭐 하고 살지..? 했던 것들이 다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하나의 퍼즐 조각이었고, 조금씩 쌓여서 드디어 그 모양이 맞춰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띵했다.
꼭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어도 괜찮다.
멋진 개발자처럼 하나에 꽂혀서 밤을 지새우거나 멋드러진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그때그때 해야 하는 혹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내다 보면 언젠가 어떤식으로든 쓰임이 생긴다고 믿는다.
무역회사에서 은행으로, 은행에서 IT회사로 스무스하게 이직하며 나는 항상 스스로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은행으로 이직할 수 있었던 것은 싫고 학점이 깎이더라도 하기 싫은 경제학을 전공한 것이, IT 회사로 이직할 때에는 은행 근무 경험, 어렸을 때 혼자 한 코딩 공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꼭 사회적인 성공이나 훌륭한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어떠한 기회가 와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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